자연현상에 대한 깊은 관찰 및 사색이 만들어낸 회화적인 이상향
― 글. 신항섭 (미술평론가)
서정 이춘환의 수묵화 세계
한국의 수묵산수화는 2000년 전후로 하여 실제의 풍경을 재현하는 실경산수가 유행하면서 수묵산수화의 새로운 경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수묵산수화는 내외적인 여건 변화에 의한 정체 및 침체기라고 할 수 있다. 미술에서 장르가 붕괴되고 현대미학이 주도하는 가운데 전통 미학을 견지하는 수묵산수화는 시류에 밀려나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기존의 수묵산수화 작가들 상당수가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외면할 수 없다는 판단인지, 전래의 수묵 및 채색 물감과 다른, 아크릴이나 여타 재료를 사용하는 등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정 이춘환은 일찍이 수묵화 작가로서의 입지를 견고히 구축했다. 첫 전시를 기점으로 하면 40여 년 동안 수묵산수화에 매진해왔다. 그럼에도 한국화가 정체되거나 침체되는 상황에 직면하자 자신의 작업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를 통해 현대미학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의 경우 전통을 이어가는 가운데 현대라는 시제에 맞는 보다 현대적인 조형 세계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그러고 보면 전통과 현대라는 두 길이 병립하고 있는 입장인데, 수묵 산수화의 경우 실경산수이다 보니 무언가 새로운 조형 세계를 전개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느낀 듯싶다.
그는 수묵산수화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전통적인 기법이나 화법을 따르지 않고 형사, 즉 실사하는 것이 진솔한 그림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화단을 주도하는 화풍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감각 및 재능을 신뢰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드러낸 셈이다. 소재 및 대상을 먼 데서 구하지 않고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 땅 완도의 풍경을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자각한 결과였다.
그가 작가로서 등단한 것은 1983년 신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이었다. 이로부터 오늘까지 40여 년 동안 수묵산수화만으로 창작활동에 매진해왔다. 산수화의 길로 들어서기 이전에 사군자로 기본적인 필법 및 화법을 익히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었다. 문인화 가운데 사군자 및 소나무, 포도, 연꽃, 모란으로 구성된 8폭 병풍은 작가적인 기량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수작이다. 유려하고, 막힘이나 주저함이 없는 힘찬 필선은 문인화 작가로서의 뛰어난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서 손색없다. 이처럼 사군자 및 화조 화목을 통해 기술적인 자유 및 격조 높은 문인화의 묘리를 터득함으로써 향후 수묵산수화에서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터전을 이룬 것이다.
첫 개인전을 통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게 된 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및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출품하여 모두 5차례 입상(이 가운데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1회 포함)함으로써 객관적인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공모전을 겨냥한 전형적인 국전 스타일 또는 미술대전 스타일을 벗어나 자신만의 신념을 바탕으로 한 실경산수의 길로 진입했다.
특정 스승의 문하에 들어가 도제교육을 받으면 화단 활동을 하는데 여러 면에서 유리한 점이 있음에도 그는 홀로서기를 택했다. 유행하는 특정의 화풍과 다른 길을 가기로 한 것은 고향 완도의 수려한 풍광을 그대로 화선지에 옮겨오는 것만으로도 소재 고갈을 느낄 수 없다는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완도는 한국의 섬 가운데 6번째로 클뿐더러 부속 도서를 264개나 거느린다. 더구나 섬치고는 큰 규모의 산들이 적지 않고, 그 가운데 상왕봉은 644m에 이르러 크고 작은 산들과 골짜기를 거느린다. 이러한 지리적인 환경은 산과 물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는데 최적의 여건이다. 또한 리아스식 해안이어서 특유의 곡선이 가미되는 산수 경치를 탐할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구태여 멀리 나가지 않더라도 일상적으로 만나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접하면서 화가로서의 꿈을 키우게 된 셈이다.
그의 수묵산수화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형태 묘사보다는 물상이 놓여 있는 상황, 즉 분위기 표현이 남다르다는 점이다. 무릇 그림의 분위기, 즉 그림에 내재하는 정서적인 표현은 자연물상이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지도록 하는 매개체의 존재유무에 대한 이해로부터 비롯된다. 그 매개체가 공기이고 바람이며 습기이다. 또한 시각적으로 인지되는 자연현상인 비와 눈과 안개가 다름 아닌 자연의 분위기를 만드는 매개체이다. 그는 변화무쌍한 해양기후에 속하는 완도의 자연풍광을 통해 이를 간파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완도의 기후를 통해 자연의 실상을 들여다보게 된 셈이다. 이로써 자연물상이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분위기, 즉 정서적인 표현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화집에 게재되는 작품은 1998년 작품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시기의 작품에서는 이미 정서적인 표현에서 남다른 시각을 감지할 수 있다. 적지 않은 작품에서는 공기의 흐름이나 안개 또는 비바람과 같은 자연현상이 구체적으로 서술되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표현이야말로 수묵 산수화 작가로서의 개별성을 결정짓는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선염기법을 중심으로 하는 자연현상에 대한 깊은 탐색은 그의 작품세계를 보다 선명히 드러내는 요인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의 작품 가운데 <대흥사 소견(세월)>은 162x130cm 크기의 대작이다. 작품 사이즈 에서 알 수 있듯이 서양화의 캔버스 F100호 사이즈와 일치한다. 일반적으로 한지는 전지, 반 절지, 사절지 등으로 크기를 분류하는데 반해 이 작품에서는 서양화 100호 크기에 맞추었다. 전통적인 한지 크기와 다른 서양화 사이즈를 의도적으로 선택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서양화적인 관점의 사실주의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관심의 표명임을 짐작케 한다. 이 작품 에서 그는 대흥사의 절간풍경을 극사실적인 기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유채물감이나 수채물감이 아닌 수묵이라는 재료만 사용했을 뿐 기법에서는 서양의 사실주의에 가깝다. 중첩되는 기와집들은 물론이려니와 고목나무조차 사실주의 기법으로 시종했다. 전래의 남화나 북화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서양의 사실주의 기법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명암표현에서 사실주의의 미학에 대한 경도를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이 말하고 있듯이 물상에 대한 형사에서는 이미 기술적으로 능숙하고 무르익었음을 웅변한다. 여기까지 이르도록 얼마나 치열한 각고의 노력이 있었는지 짐작케 하는 작품이다. 이로써 화가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덕목인 ‘잘 그리는 화가’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된 것이다. 고목을 전면에 세우고 사찰의 건축물은 뒤쪽으로 배치하는 대담한 구도 설정이 돋보이는데, 이를 통해 화면 경영에도 예사로움을 넘어섰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특히 1998년에는 두 가지 소재에 집중하고 있다. 하나는 바닷가의 기암괴석이요, 다른 하나는 완도의 소소한 풍경들이다. <독도 애착>, <동해의 속삭임>, <독도>, 또 다른 <동 해의 속삭임> 등 명제에서 알 수 있듯이 기암괴석이 돌출하는 독도 및 동해 바닷가 풍경이 주류를 이룬다.
<복사꽃 필 무렵>과 <봄이 오는 길목>은 아름다운 시골의 봄 풍경이다. 이들 작품은 청운의 꿈을 품고 완도를 떠나 광주를 거쳐 서울에 올라온 이후에 제작되었다. 아무래도 활동무대 가 서울이다 보니 일반적인 산수화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명산대천을 주유하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좇게 되었는지 모른다. 봄꽃을 상징하는 벚꽃과 복사꽃을 소재로 한 이 두 작품은 아름다운 봄의 정서를 화사한 담채로 표현하고 있다. 기존의 수묵산수와 달리 산풍경은 준법에 개의치 않은 실루엣 이미지로 처리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이들 두 작품은 화사한 꽃빛깔을 선명히 드러냄으로써 봄의 정서가 오롯이 살아난다. 보다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봄의 정경과 마주하고 있는 듯싶은 느낌을 안겨주는 것이다.
바닷가의 기암괴석을 소재로 한 일련의 작품들은 명료하고 힘차며 속도감이 느껴지는 필법을 구사하여 거친 파도와 그에 맞서는 바위들의 긴장감 넘치는 장면을 포착한다. 풍파에 대결하며 기암괴석이 된 바위들의 자태를 희롱하듯 거칠게 몰아붙이는 높은 파도가 유난히 강조되고 있다. 그야말로 물밀듯이 몰려가다가 바위에 부딪쳐 튕기듯 치솟으며 곡선을 만드는 파도의 모양새가 일품이다. 바위와 파도가 맞서는 역동적인 장면을 실감나게 표현한 이들 작품은 확실히 색다른 멋과 힘이 느껴진다. 농묵에 의한 명확한 필선과 대범한 준이 기암괴석을 명징하게 묘사, 대지의 기운이 농묵으로 응결하는 듯싶은 형상이 만들어지고 있기에 그렇다.
같은 해의 작품 가운데 <지리산>, <금강일만경>, <서운>, <대둔산 조망>은 기암괴석이 이어지는 높은 산의 바위 연봉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들 작품은 바닷가 기암괴석을 소재로 한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바닷가의 기암괴석을 바위 연봉이 대신하고 있는 듯싶은 분위기인데, 바위산의 기세가 당당하고 그 형태가 명료하다. 농묵이 주도하는 바위산 연봉과 담묵에 의한 운해가 조화를 이룸으로써 유현의 세계가 펼쳐진다. 원경이 만들어내는 고산준령의 모양새를 통해 현실을 초탈한 선계를 소요케 되는 것이다.
<지리산>과 <서운>은 바위 연봉 중심의 구도여서 더욱 비현실적으로 보일 지경이다. 다만 <금강일만경>과 <대둔산 조망>은 기묘한 형상의 기암괴석이 도열하는 바위산의 특징을 명쾌히 보여주려는지 비교적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묘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가을정취가 짙게 깃들인 금강산과 대둔산의 수려한 산세가 시선을 압도한다. 이들 두 작품은 사실적인 묘사와 원근 등 수묵담채이면서도 서양의 풍경화에 근사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실사를 중시하는 실경산수로서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1999년에 이르면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다. 이 해 초반까지는 <도담의 아침>과 <산사의 추색>이나 <설악산 소견>에서 볼 수 있듯이 실경산수에 충실하다. 하지만 중반부터는 시선을 원경에서 근경으로 옮기면서 물상의 구체적인 묘사보다는 자연현상인 대기의 상태 즉, 바람, 습도, 빛 그리고 시간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자연의 분위기 표현에 중점을 두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자연이란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자각으로부터 발단한다. 눈에 보이지는 않을지언정 엄연히 실재하는 자연현상도 그림에 담을 수 있어야 한다는 성찰에 근거한다. 자연과 마주하고 있는 그 순간 옷깃을 파고드는 대기의 상태, 즉 공기의 온도차라든가 습도, 피부를 스치는 바람을 감득하고 그 느낌을 작업에 반영하고자 했다.
<자연의 소리>, <여명>, <물소리 바람소리>, <바람부는 호수>, <새벽 산길>, <깨어나는 호수>, <호수의 아침>, <솔바람>, <꽃바람 부는 날>, <북한산의 우후> 등 일련의 작품 명제가 말하듯이 시각적인 이미지 너머의 세계인 자연현상을 표현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처럼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는 작품에 그대로 나타난다. 습윤한 공기가 감도는 새벽 산길, 어둠에서 깨어나는 이른 아침의 호수, 깊은 어둠에서 서서히 밝아지는 여명의 빛을 머금은 구름과 바람, 호숫가의 풀숲을 파고드는 아침안개, 작은 개울에서 물 흐르는 소리와 구름을 밀어내는 거센 바람소리, 나뭇가지가 바람에 휘어지도록 힘차게 부는 바람의 이미지, 소나무를 스치는 솔바람 소리 등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자연현상을 체득하면서 표현하는 작품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이다. <자연의 소리>라는 명제가 붙은 작품들은 청각적으로 감지되는 사실뿐만 아니라 생명체들의 생기하는 기운, 즉 대자연의 본질인 생명의 파동을 시각화하려는 시도이다.
선염기법은 대기의 움직임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구름의 이미지와 습윤한 공기를 머금은 안개의 표현에서 두드러진다. 바람이 특정 방향으로 거세게 부는 상황을 표현할 때 구름의 모양은 속도감이 실리고 직선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안개는 나무와 숲 그리고 풀들이 우거진 곳에서 무겁고 어둡게 표현된다. 여기에도 역시 물의 번짐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선염기법이 응용된다. 선염기법은 붓의 표현이라기보다는 물과 수묵과 한지의 상호작용, 즉 물리적인 특성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를 어떻게 적절히 조절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선염기법은 적재적소에 아주 효과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대기나 바람의 움직임을 선연히 드러내고자 수묵의 농도를 조절하면서 신비스러운 이미지로 표현한다. 수묵의 번짐, 즉 선염은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사실을 시각적인 이미지로 변환하는데 효과적인 최적의 표현기법임을 알 수 있다.
2001년에 이르자 그는 돌연 고향 완도의 수려한 풍광에 매료된다. 일찍이 화가로서의 미적 감수성을 일깨워준 고향풍경에 시선을 돌리게 된 것이다. 서울에서 활동하면서도 언제나 마음의 빚을 청산하지 못했던 그로서는 언젠가는 고향의 풍광을 노래하겠다는 다짐이 있었다. 그 시기가 도래했음을 직감한 그는 주저 없이 고향으로 내려갔다. 무엇을 그릴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발길이 닿는 곳에서 스케치를 하고 마음속에 담아 화실에 돌아와 풀어내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작품 하나하나가 지역적인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을뿐더러 수묵산수화로 재현했을 때 그 본연의 자연미가 더욱 돋보인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크고 작은 어촌마다 거친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는 자연경치와 더불어 바다풍경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몽돌해변을 실감나게 묘사한 작품도 실경산수의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산과 언덕 안으로 오목하게 들어앉은 어촌정경은 평화롭고 정겹기 그지없다. 어느 곳에서나 어김없이 등장하는 소나무를 전경에 두고 크고 작은 섬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다도해 풍경은 시야를 끝없이 확장시켜준다. 바다에 연한 시골마을로 가는 길은 섬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듯싶기도 하다.
한마디로 발이 닳도록 돌아다니며 찬미한 완도와 부속도서 풍정을 통해 수묵산수의 또 다른 가치를 음미하게 된다. 이들 작품은 2002년도 초까지 이어진다. 이 기간 동안 고향에 대한 감사와 마음의 빚을 정리하게 됨으로써 보다 홀가분한 자세로 다시 전국의 경승지를 찾을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른다.
2005년에 이르면 완도에서 시작된 실경산수는 시야를 넓혀 보다 넓은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물론 이 시기에도 여전히 완도와 부속도서의 아름다운 풍광에 대한 찬미는 이어진다. <동백리 일우>, <솔섬의 정>, <정산항의 아침>, <예송리>, <보길도>의 명제에서 알 수 있듯이 완도 일대에 대한 애정이 지속된다. 이와 함께 전국에 산재한 경승지와 숨은 명소들을 찾아다니며 개인적인 수묵산수의 지평을 넓히게 된다.
어느 면에서 한국의 산하는 우람하고 장대하기보다는 크고 작은 산들이 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하게 겹쳐지는 풍경이어서 산수풍경으로서는 제격이라 할만하다. 그러므로 고산준령의 장엄한 산세가 아닐지라도 아기자기한 능선의 연속인 산수 경치를 담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다시 말해 도회지를 벗어나면 흔히 만날 수 있는 풍경조차 수묵으로 묘사하면 새삼 아름다운 산수 경치가 된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담양 가는 길>의 경우 도열하듯 소나무를 전면에 배치하고, 시선을 점차 밀어내면 아득히 먼 곳 산들이 줄줄이 늘어서는 정경은 가히 장관을 이룬다. 근경에서는 형태를 뚜렷하게 묘사하다가 거리가 멀어지면서 차츰 흐릿하게 처리하는 일련의 공간표현은 수묵산수의 묘리, 즉 유현의 세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새기게 해준다. 이야말로 한국산하가 가지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의 하나일 터이다. 이러한 원근 및 공간은 그가 추구하는 실경산수의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자 힘이다.
그는 작품에 따라 자연현상이 만들어내는 신비스러움을 구름이나 운해, 안개 등의 이미지를 통해 보다 풍부한 시각적인 이미지 및 내용을 가미하고 있다. 구름이나 눈비, 안개 등 자연현상을 시각화함으로써 산수에다 내용을 보탤 수 있게 된 것이다. 적란운이나 적운, 층적운, 권운 등 우리가 알고 있는 구름 이미지와는 판이하게 다른, 마치 물결이 요동치는 듯싶은 모양 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이미 1999년도에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이래 2005년에 절정을 이루고 있는데, 2007년에 이르러서는 여기에다 시각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사색적인 이미지를 가미하는 형태로 발전한다.
2007년도 작품에서는 <자연의 소리>, <자연의 숨결>과 같은 다소 추상적인 명제가 자주 등장한다. 이는 자연이라는 대상이 가지고 있는 형태적인 이해 너머에 존재하는 생명의 기운 및 자연현상에 대한 관심이자 시각화라고 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사실에 머물지 않고 뭇 생명체의 텃밭인 자연의 내밀한 세계, 즉 속살을 들여다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상적인 세계라고 할 수 있는 물상의 형태미에 대한 찬미를 넘어 생명의 기운과 더불어 대기의 흐름을 시각적인 이미지로 바꾸어내는데 의미를 두는 것이다.
<자연의 숨결>이라는 명제 가운데 울창한 소나무 숲에 구름이 내려오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 2점이 있다. 산줄기를 따라 내려서는 운해는 소나무 숲을 침범하는 형국인데, 한 점은 그 사이에 무지개까지 곁들인다. 운해와 무지개가 함께하는 상황은 비현실적이지만 이는 자연의 신비스러운 순간을 보여주려는 의도적인 설정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비현실성이야말로 현실을 초월하는 또 다른 세계가 자연에 존재함을 역설하기 위한 묘수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자연의 숨결> 작품은 흡사 흑백 필름사진의 음화처럼 배경을 어둡게 처리하고 나무들을 하얗게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어두운 밤의 이미지를 표현한 경우인데 수묵산수화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이처럼 이미지의 반전을 통해 자연에 대한 심층적이고 탐미적인 태도를 명확히 드러낸다. 일상적인 시각으로는 볼 수 없는 세계로까지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것은 역시 자연의 속내를 들여다보려는 의지에 기인한다.
그런가 하면 <자연의 소리>라는 명제를 가진 2점의 작품은 하단에 소수의 소나무와 잡목을 배치한 뒤 상단 대부분을 선염기법으로 채우는 독특한 구도를 통해 자연현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가파른 산줄기를 엄습하는 운해의 움직임, 즉 수묵의 농담변화를 통해 구름이 산위로부터 내려서는 동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작품이다. 기류에 따라 그 모양이 변화하는 구름과 바람의 움직임은 오묘한 자연의 신비스러움을 회화적인 이미지로 풀어내는데 아주 효과적인 소재이다. 한마디로 수묵과 한지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활용한 선염기법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또한 <새벽>, <주산지의 아침>이라는 명제의 작품도 수묵산수화의 상투적인 접근방식을 뛰어넘어 대기의 변화, 또는 낮과 밤이 교차하는 미묘한 시간의 변화를 포착하고자 한다. 이는 자연현상과 더불어 시간대에 따라 변화하는 미묘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표현하려는 의지의 소산이다. 이러한 시각이야말로 명민한 예술가적인 감수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자연이라는 단지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만이 전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서정미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인지 모른다.
그의 수묵산수화는 현실풍경을 재현하는 실경산수를 지향하고 있지만 단순히 눈에 보이는 사실에만 머물지 않고 자연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방식을 강구해냈다. 그리하여 시각적으로 인지되지 않는 자연현상, 즉 눈비, 비바람, 안개와 같이 신체적인 감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사실 너머의 세계, 즉 대지의 기운이나 울림, 생명의 파동 그리고 청각적인 세계까지 아우르는 남다른 시각으로 일관해왔다. 이처럼 다른 시각이나 관점은 수묵산수화의 지평을 넓히는 결과로 작용했다. 그의 수묵산수화가 독자적인 형식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부분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자연에 대한 진지한 관찰 및 탐구는 물론이요, 사색 그리고 철학적인 이해를 통해 승화된 현실로서의 회화적인 이상세계를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연현상에 대한 깊은 관찰 및 사색이 만들어낸 회화적인 이상향
― 글. 신항섭 (미술평론가)
서정 이춘환의 수묵화 세계
한국의 수묵산수화는 2000년 전후로 하여 실제의 풍경을 재현하는 실경산수가 유행하면서 수묵산수화의 새로운 경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수묵산수화는 내외적인 여건 변화에 의한 정체 및 침체기라고 할 수 있다. 미술에서 장르가 붕괴되고 현대미학이 주도하는 가운데 전통 미학을 견지하는 수묵산수화는 시류에 밀려나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기존의 수묵산수화 작가들 상당수가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외면할 수 없다는 판단인지, 전래의 수묵 및 채색 물감과 다른, 아크릴이나 여타 재료를 사용하는 등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정 이춘환은 일찍이 수묵화 작가로서의 입지를 견고히 구축했다. 첫 전시를 기점으로 하면 40여 년 동안 수묵산수화에 매진해왔다. 그럼에도 한국화가 정체되거나 침체되는 상황에 직면하자 자신의 작업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를 통해 현대미학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의 경우 전통을 이어가는 가운데 현대라는 시제에 맞는 보다 현대적인 조형 세계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그러고 보면 전통과 현대라는 두 길이 병립하고 있는 입장인데, 수묵 산수화의 경우 실경산수이다 보니 무언가 새로운 조형 세계를 전개하기에 한계가 있다고 느낀 듯싶다.
그는 수묵산수화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전통적인 기법이나 화법을 따르지 않고 형사, 즉 실사하는 것이 진솔한 그림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화단을 주도하는 화풍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감각 및 재능을 신뢰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드러낸 셈이다. 소재 및 대상을 먼 데서 구하지 않고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 땅 완도의 풍경을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자각한 결과였다.
그가 작가로서 등단한 것은 1983년 신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이었다. 이로부터 오늘까지 40여 년 동안 수묵산수화만으로 창작활동에 매진해왔다. 산수화의 길로 들어서기 이전에 사군자로 기본적인 필법 및 화법을 익히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었다. 문인화 가운데 사군자 및 소나무, 포도, 연꽃, 모란으로 구성된 8폭 병풍은 작가적인 기량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수작이다. 유려하고, 막힘이나 주저함이 없는 힘찬 필선은 문인화 작가로서의 뛰어난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서 손색없다. 이처럼 사군자 및 화조 화목을 통해 기술적인 자유 및 격조 높은 문인화의 묘리를 터득함으로써 향후 수묵산수화에서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터전을 이룬 것이다.
첫 개인전을 통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게 된 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및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출품하여 모두 5차례 입상(이 가운데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1회 포함)함으로써 객관적인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공모전을 겨냥한 전형적인 국전 스타일 또는 미술대전 스타일을 벗어나 자신만의 신념을 바탕으로 한 실경산수의 길로 진입했다.
특정 스승의 문하에 들어가 도제교육을 받으면 화단 활동을 하는데 여러 면에서 유리한 점이 있음에도 그는 홀로서기를 택했다. 유행하는 특정의 화풍과 다른 길을 가기로 한 것은 고향 완도의 수려한 풍광을 그대로 화선지에 옮겨오는 것만으로도 소재 고갈을 느낄 수 없다는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완도는 한국의 섬 가운데 6번째로 클뿐더러 부속 도서를 264개나 거느린다. 더구나 섬치고는 큰 규모의 산들이 적지 않고, 그 가운데 상왕봉은 644m에 이르러 크고 작은 산들과 골짜기를 거느린다. 이러한 지리적인 환경은 산과 물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는데 최적의 여건이다. 또한 리아스식 해안이어서 특유의 곡선이 가미되는 산수 경치를 탐할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구태여 멀리 나가지 않더라도 일상적으로 만나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접하면서 화가로서의 꿈을 키우게 된 셈이다.
그의 수묵산수화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형태 묘사보다는 물상이 놓여 있는 상황, 즉 분위기 표현이 남다르다는 점이다. 무릇 그림의 분위기, 즉 그림에 내재하는 정서적인 표현은 자연물상이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지도록 하는 매개체의 존재유무에 대한 이해로부터 비롯된다. 그 매개체가 공기이고 바람이며 습기이다. 또한 시각적으로 인지되는 자연현상인 비와 눈과 안개가 다름 아닌 자연의 분위기를 만드는 매개체이다. 그는 변화무쌍한 해양기후에 속하는 완도의 자연풍광을 통해 이를 간파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완도의 기후를 통해 자연의 실상을 들여다보게 된 셈이다. 이로써 자연물상이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분위기, 즉 정서적인 표현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화집에 게재되는 작품은 1998년 작품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시기의 작품에서는 이미 정서적인 표현에서 남다른 시각을 감지할 수 있다. 적지 않은 작품에서는 공기의 흐름이나 안개 또는 비바람과 같은 자연현상이 구체적으로 서술되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표현이야말로 수묵 산수화 작가로서의 개별성을 결정짓는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선염기법을 중심으로 하는 자연현상에 대한 깊은 탐색은 그의 작품세계를 보다 선명히 드러내는 요인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의 작품 가운데 <대흥사 소견(세월)>은 162x130cm 크기의 대작이다. 작품 사이즈 에서 알 수 있듯이 서양화의 캔버스 F100호 사이즈와 일치한다. 일반적으로 한지는 전지, 반 절지, 사절지 등으로 크기를 분류하는데 반해 이 작품에서는 서양화 100호 크기에 맞추었다. 전통적인 한지 크기와 다른 서양화 사이즈를 의도적으로 선택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서양화적인 관점의 사실주의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관심의 표명임을 짐작케 한다. 이 작품 에서 그는 대흥사의 절간풍경을 극사실적인 기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유채물감이나 수채물감이 아닌 수묵이라는 재료만 사용했을 뿐 기법에서는 서양의 사실주의에 가깝다. 중첩되는 기와집들은 물론이려니와 고목나무조차 사실주의 기법으로 시종했다. 전래의 남화나 북화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서양의 사실주의 기법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명암표현에서 사실주의의 미학에 대한 경도를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이 말하고 있듯이 물상에 대한 형사에서는 이미 기술적으로 능숙하고 무르익었음을 웅변한다. 여기까지 이르도록 얼마나 치열한 각고의 노력이 있었는지 짐작케 하는 작품이다. 이로써 화가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덕목인 ‘잘 그리는 화가’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된 것이다. 고목을 전면에 세우고 사찰의 건축물은 뒤쪽으로 배치하는 대담한 구도 설정이 돋보이는데, 이를 통해 화면 경영에도 예사로움을 넘어섰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특히 1998년에는 두 가지 소재에 집중하고 있다. 하나는 바닷가의 기암괴석이요, 다른 하나는 완도의 소소한 풍경들이다. <독도 애착>, <동해의 속삭임>, <독도>, 또 다른 <동 해의 속삭임> 등 명제에서 알 수 있듯이 기암괴석이 돌출하는 독도 및 동해 바닷가 풍경이 주류를 이룬다.
<복사꽃 필 무렵>과 <봄이 오는 길목>은 아름다운 시골의 봄 풍경이다. 이들 작품은 청운의 꿈을 품고 완도를 떠나 광주를 거쳐 서울에 올라온 이후에 제작되었다. 아무래도 활동무대 가 서울이다 보니 일반적인 산수화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명산대천을 주유하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좇게 되었는지 모른다. 봄꽃을 상징하는 벚꽃과 복사꽃을 소재로 한 이 두 작품은 아름다운 봄의 정서를 화사한 담채로 표현하고 있다. 기존의 수묵산수와 달리 산풍경은 준법에 개의치 않은 실루엣 이미지로 처리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이들 두 작품은 화사한 꽃빛깔을 선명히 드러냄으로써 봄의 정서가 오롯이 살아난다. 보다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봄의 정경과 마주하고 있는 듯싶은 느낌을 안겨주는 것이다.
바닷가의 기암괴석을 소재로 한 일련의 작품들은 명료하고 힘차며 속도감이 느껴지는 필법을 구사하여 거친 파도와 그에 맞서는 바위들의 긴장감 넘치는 장면을 포착한다. 풍파에 대결하며 기암괴석이 된 바위들의 자태를 희롱하듯 거칠게 몰아붙이는 높은 파도가 유난히 강조되고 있다. 그야말로 물밀듯이 몰려가다가 바위에 부딪쳐 튕기듯 치솟으며 곡선을 만드는 파도의 모양새가 일품이다. 바위와 파도가 맞서는 역동적인 장면을 실감나게 표현한 이들 작품은 확실히 색다른 멋과 힘이 느껴진다. 농묵에 의한 명확한 필선과 대범한 준이 기암괴석을 명징하게 묘사, 대지의 기운이 농묵으로 응결하는 듯싶은 형상이 만들어지고 있기에 그렇다.
같은 해의 작품 가운데 <지리산>, <금강일만경>, <서운>, <대둔산 조망>은 기암괴석이 이어지는 높은 산의 바위 연봉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들 작품은 바닷가 기암괴석을 소재로 한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바닷가의 기암괴석을 바위 연봉이 대신하고 있는 듯싶은 분위기인데, 바위산의 기세가 당당하고 그 형태가 명료하다. 농묵이 주도하는 바위산 연봉과 담묵에 의한 운해가 조화를 이룸으로써 유현의 세계가 펼쳐진다. 원경이 만들어내는 고산준령의 모양새를 통해 현실을 초탈한 선계를 소요케 되는 것이다.
<지리산>과 <서운>은 바위 연봉 중심의 구도여서 더욱 비현실적으로 보일 지경이다. 다만 <금강일만경>과 <대둔산 조망>은 기묘한 형상의 기암괴석이 도열하는 바위산의 특징을 명쾌히 보여주려는지 비교적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묘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가을정취가 짙게 깃들인 금강산과 대둔산의 수려한 산세가 시선을 압도한다. 이들 두 작품은 사실적인 묘사와 원근 등 수묵담채이면서도 서양의 풍경화에 근사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실사를 중시하는 실경산수로서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1999년에 이르면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다. 이 해 초반까지는 <도담의 아침>과 <산사의 추색>이나 <설악산 소견>에서 볼 수 있듯이 실경산수에 충실하다. 하지만 중반부터는 시선을 원경에서 근경으로 옮기면서 물상의 구체적인 묘사보다는 자연현상인 대기의 상태 즉, 바람, 습도, 빛 그리고 시간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자연의 분위기 표현에 중점을 두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자연이란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자각으로부터 발단한다. 눈에 보이지는 않을지언정 엄연히 실재하는 자연현상도 그림에 담을 수 있어야 한다는 성찰에 근거한다. 자연과 마주하고 있는 그 순간 옷깃을 파고드는 대기의 상태, 즉 공기의 온도차라든가 습도, 피부를 스치는 바람을 감득하고 그 느낌을 작업에 반영하고자 했다.
<자연의 소리>, <여명>, <물소리 바람소리>, <바람부는 호수>, <새벽 산길>, <깨어나는 호수>, <호수의 아침>, <솔바람>, <꽃바람 부는 날>, <북한산의 우후> 등 일련의 작품 명제가 말하듯이 시각적인 이미지 너머의 세계인 자연현상을 표현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처럼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는 작품에 그대로 나타난다. 습윤한 공기가 감도는 새벽 산길, 어둠에서 깨어나는 이른 아침의 호수, 깊은 어둠에서 서서히 밝아지는 여명의 빛을 머금은 구름과 바람, 호숫가의 풀숲을 파고드는 아침안개, 작은 개울에서 물 흐르는 소리와 구름을 밀어내는 거센 바람소리, 나뭇가지가 바람에 휘어지도록 힘차게 부는 바람의 이미지, 소나무를 스치는 솔바람 소리 등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자연현상을 체득하면서 표현하는 작품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이다. <자연의 소리>라는 명제가 붙은 작품들은 청각적으로 감지되는 사실뿐만 아니라 생명체들의 생기하는 기운, 즉 대자연의 본질인 생명의 파동을 시각화하려는 시도이다.
선염기법은 대기의 움직임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구름의 이미지와 습윤한 공기를 머금은 안개의 표현에서 두드러진다. 바람이 특정 방향으로 거세게 부는 상황을 표현할 때 구름의 모양은 속도감이 실리고 직선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안개는 나무와 숲 그리고 풀들이 우거진 곳에서 무겁고 어둡게 표현된다. 여기에도 역시 물의 번짐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선염기법이 응용된다. 선염기법은 붓의 표현이라기보다는 물과 수묵과 한지의 상호작용, 즉 물리적인 특성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를 어떻게 적절히 조절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선염기법은 적재적소에 아주 효과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대기나 바람의 움직임을 선연히 드러내고자 수묵의 농도를 조절하면서 신비스러운 이미지로 표현한다. 수묵의 번짐, 즉 선염은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사실을 시각적인 이미지로 변환하는데 효과적인 최적의 표현기법임을 알 수 있다.
2001년에 이르자 그는 돌연 고향 완도의 수려한 풍광에 매료된다. 일찍이 화가로서의 미적 감수성을 일깨워준 고향풍경에 시선을 돌리게 된 것이다. 서울에서 활동하면서도 언제나 마음의 빚을 청산하지 못했던 그로서는 언젠가는 고향의 풍광을 노래하겠다는 다짐이 있었다. 그 시기가 도래했음을 직감한 그는 주저 없이 고향으로 내려갔다. 무엇을 그릴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발길이 닿는 곳에서 스케치를 하고 마음속에 담아 화실에 돌아와 풀어내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작품 하나하나가 지역적인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을뿐더러 수묵산수화로 재현했을 때 그 본연의 자연미가 더욱 돋보인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크고 작은 어촌마다 거친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는 자연경치와 더불어 바다풍경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몽돌해변을 실감나게 묘사한 작품도 실경산수의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산과 언덕 안으로 오목하게 들어앉은 어촌정경은 평화롭고 정겹기 그지없다. 어느 곳에서나 어김없이 등장하는 소나무를 전경에 두고 크고 작은 섬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다도해 풍경은 시야를 끝없이 확장시켜준다. 바다에 연한 시골마을로 가는 길은 섬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듯싶기도 하다.
한마디로 발이 닳도록 돌아다니며 찬미한 완도와 부속도서 풍정을 통해 수묵산수의 또 다른 가치를 음미하게 된다. 이들 작품은 2002년도 초까지 이어진다. 이 기간 동안 고향에 대한 감사와 마음의 빚을 정리하게 됨으로써 보다 홀가분한 자세로 다시 전국의 경승지를 찾을 수 있게 되었는지 모른다.
2005년에 이르면 완도에서 시작된 실경산수는 시야를 넓혀 보다 넓은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물론 이 시기에도 여전히 완도와 부속도서의 아름다운 풍광에 대한 찬미는 이어진다. <동백리 일우>, <솔섬의 정>, <정산항의 아침>, <예송리>, <보길도>의 명제에서 알 수 있듯이 완도 일대에 대한 애정이 지속된다. 이와 함께 전국에 산재한 경승지와 숨은 명소들을 찾아다니며 개인적인 수묵산수의 지평을 넓히게 된다.
어느 면에서 한국의 산하는 우람하고 장대하기보다는 크고 작은 산들이 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하게 겹쳐지는 풍경이어서 산수풍경으로서는 제격이라 할만하다. 그러므로 고산준령의 장엄한 산세가 아닐지라도 아기자기한 능선의 연속인 산수 경치를 담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다시 말해 도회지를 벗어나면 흔히 만날 수 있는 풍경조차 수묵으로 묘사하면 새삼 아름다운 산수 경치가 된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담양 가는 길>의 경우 도열하듯 소나무를 전면에 배치하고, 시선을 점차 밀어내면 아득히 먼 곳 산들이 줄줄이 늘어서는 정경은 가히 장관을 이룬다. 근경에서는 형태를 뚜렷하게 묘사하다가 거리가 멀어지면서 차츰 흐릿하게 처리하는 일련의 공간표현은 수묵산수의 묘리, 즉 유현의 세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새기게 해준다. 이야말로 한국산하가 가지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의 하나일 터이다. 이러한 원근 및 공간은 그가 추구하는 실경산수의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자 힘이다.
그는 작품에 따라 자연현상이 만들어내는 신비스러움을 구름이나 운해, 안개 등의 이미지를 통해 보다 풍부한 시각적인 이미지 및 내용을 가미하고 있다. 구름이나 눈비, 안개 등 자연현상을 시각화함으로써 산수에다 내용을 보탤 수 있게 된 것이다. 적란운이나 적운, 층적운, 권운 등 우리가 알고 있는 구름 이미지와는 판이하게 다른, 마치 물결이 요동치는 듯싶은 모양 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이미 1999년도에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이래 2005년에 절정을 이루고 있는데, 2007년에 이르러서는 여기에다 시각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사색적인 이미지를 가미하는 형태로 발전한다.
2007년도 작품에서는 <자연의 소리>, <자연의 숨결>과 같은 다소 추상적인 명제가 자주 등장한다. 이는 자연이라는 대상이 가지고 있는 형태적인 이해 너머에 존재하는 생명의 기운 및 자연현상에 대한 관심이자 시각화라고 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사실에 머물지 않고 뭇 생명체의 텃밭인 자연의 내밀한 세계, 즉 속살을 들여다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상적인 세계라고 할 수 있는 물상의 형태미에 대한 찬미를 넘어 생명의 기운과 더불어 대기의 흐름을 시각적인 이미지로 바꾸어내는데 의미를 두는 것이다.
<자연의 숨결>이라는 명제 가운데 울창한 소나무 숲에 구름이 내려오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 2점이 있다. 산줄기를 따라 내려서는 운해는 소나무 숲을 침범하는 형국인데, 한 점은 그 사이에 무지개까지 곁들인다. 운해와 무지개가 함께하는 상황은 비현실적이지만 이는 자연의 신비스러운 순간을 보여주려는 의도적인 설정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비현실성이야말로 현실을 초월하는 또 다른 세계가 자연에 존재함을 역설하기 위한 묘수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자연의 숨결> 작품은 흡사 흑백 필름사진의 음화처럼 배경을 어둡게 처리하고 나무들을 하얗게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어두운 밤의 이미지를 표현한 경우인데 수묵산수화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이처럼 이미지의 반전을 통해 자연에 대한 심층적이고 탐미적인 태도를 명확히 드러낸다. 일상적인 시각으로는 볼 수 없는 세계로까지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것은 역시 자연의 속내를 들여다보려는 의지에 기인한다.
그런가 하면 <자연의 소리>라는 명제를 가진 2점의 작품은 하단에 소수의 소나무와 잡목을 배치한 뒤 상단 대부분을 선염기법으로 채우는 독특한 구도를 통해 자연현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가파른 산줄기를 엄습하는 운해의 움직임, 즉 수묵의 농담변화를 통해 구름이 산위로부터 내려서는 동적인 이미지를 강조하는 작품이다. 기류에 따라 그 모양이 변화하는 구름과 바람의 움직임은 오묘한 자연의 신비스러움을 회화적인 이미지로 풀어내는데 아주 효과적인 소재이다. 한마디로 수묵과 한지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활용한 선염기법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또한 <새벽>, <주산지의 아침>이라는 명제의 작품도 수묵산수화의 상투적인 접근방식을 뛰어넘어 대기의 변화, 또는 낮과 밤이 교차하는 미묘한 시간의 변화를 포착하고자 한다. 이는 자연현상과 더불어 시간대에 따라 변화하는 미묘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표현하려는 의지의 소산이다. 이러한 시각이야말로 명민한 예술가적인 감수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자연이라는 단지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만이 전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서정미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인지 모른다.
그의 수묵산수화는 현실풍경을 재현하는 실경산수를 지향하고 있지만 단순히 눈에 보이는 사실에만 머물지 않고 자연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방식을 강구해냈다. 그리하여 시각적으로 인지되지 않는 자연현상, 즉 눈비, 비바람, 안개와 같이 신체적인 감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사실 너머의 세계, 즉 대지의 기운이나 울림, 생명의 파동 그리고 청각적인 세계까지 아우르는 남다른 시각으로 일관해왔다. 이처럼 다른 시각이나 관점은 수묵산수화의 지평을 넓히는 결과로 작용했다. 그의 수묵산수화가 독자적인 형식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부분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자연에 대한 진지한 관찰 및 탐구는 물론이요, 사색 그리고 철학적인 이해를 통해 승화된 현실로서의 회화적인 이상세계를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