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환, 낙원의 섬

2021-01-11

이춘환, 낙원의 섬 

― 글. Robert C. Morgan 


CHOUN HWAN LEE THE ISLAND PARADISE

In essence, he was possessed by a vision of the world that he knew from the beginning, a vision that has never left or wavered beyond his consciousness. 


내가 아는 많은 예술가들은 서로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들은 대개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각자 다른 곳에서 태어나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주류(그것이 무엇이든 간에)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들의 관심사는 대체로 같은 행동 양식을 보이는 평범한 사람들의 관심사와 유리되어 있다. 내가 만난 대다수의 예술가들은 현실로부터 고립되었다고 보여지는 삶의 방식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며, 따라서 그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용한 일반적인 삶의 기준에서 벗어나 있다.


1956년에 태어난 이춘환도 그런 예술가다. 그의 사상은 일상의 세계를 점유하는 평범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여타 예술가들과도 다른 궤적을 보인다. 이춘환은 자연적 지리, 특히 그가 태어나고 자란 섬이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남해안의 수려한 풍경으로 유명한 완도에 초점을 맞춘 삶의 방식을 택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이춘환은 번잡한 도시나 교외 환경에서 자란 예술가와는 다른 자신만의 기준을 갖게 되었다. 말하자면 그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법과 자연을 동양 철학의 절묘한 발현으로 포용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관행을 따르지 않고 그만의 작품세계를 펼쳤다. 


이춘환은 자신의 고요한 비전에 부합하는 세계를 재창조하기 위해 여러 의미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과업인 기존의 틀을 깨는 작업을 추구했다. 실제로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은 완도의 자연에 바탕을 둔 그의 상상력이었다. 이춘환은 완도를 유기적이고 공명하는 풍경으로 이해했는데, 그곳은 그가 나고 자란 고향일 뿐만 아니라 그가 그 현상적 형태와 함께 낙원의 비전을 발견한 장소라는 점에서 더 깊은 의미를 갖는다. 완도는 이춘환에게 자연의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자아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화가가 되기로 했을 때 싹튼 원대한 비전의 바탕이었다. 요컨대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던 세계의 비전, 지금까지 떠나지 않고 각인된 비전에 사로잡혔다.


이춘환은 섬에서 자라면서 보고 느끼고 사고한 무수한 구성 요소들을 작품에 담았다. 이러한 감정들은 주로 자연 의식의 형성 경험에 기반을 두었다. 그는 현실이 아닌 모든 것에서 거리를 두었다가 이후 현세적 개방성의 영역에 존재한다고 여기는 대상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는 결국 그의 세계와 그를 둘러싼 세계인 돌과 바다, 해초와 모래, 해양 공간의 토대를 이루고 궁극적으로 끊임없이 생동하는 역설적 우주의 발견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나는 이춘환이 한국의 반구상 미술을 두고 “연속성 속에 인고의 시간을 지나 응축된 흔적들을 담았다”라고 말한 바 있음을 언급하고자 한다.


본 글은 주로 회화, 추상회화, 특히 서양의 후기 모더니즘과 관련된 회화로서 동아시아, 특히 한국화 화가들에 의해 반세기 남짓 이전에 전용된 종류의 회화를 다룬다. 1960년대 초, 후기회화적 추상(즉, 색면회화)이 주도하기 시작한 시기에 뉴욕에 진출한 화가 김환기를 언급하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실제로 김환기의 작품이 반구상에서 추상으로 전환한 것은 한국회화의 주요한 진척이었다. 이춘환이 두 사람에게 새로운 회화의 문을 열어주었을 김환기의 작품을 통해 동지의식을 느꼈으리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두 사람은 각자 고유한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전통적인 ‘달 항아리’ 작품들에서 보듯 구상주의적 방식으로, 그리고 이춘환의 ‘산의 기운’ 시리즈에서 보듯 색면추상 부문에서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두 화가는 일정 기간 동안 각자 섬에서 그림을 그렸으며, 이춘환에게 그것은 청산도, 김환기에게는 안좌도였다. 그들은 그곳에서 각자의 추상을 추구했다.


이춘환에게 이것은 1989년 한지 위에 수묵으로 시작된 ‘빛+결’이 세월이 흘러 2019년부터 색상의 변화를 시도하며 현재까지 이어지게 될 비옥한 시기였다. 그의 혼합 단색화가 미술비평계의 이목을 끈 것은 바로 지점이었다. 이 시리즈에서 이춘환은 화면에 독특한 색과 질감을 만들기 위해 잔여 물감을 레이어로 덧칠하는 반복의 개념을 더욱 발전시켰다. 오묘한 색상에 대한 강조가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이춘환은 선으로 색을 ‘지워’ 나가는 ‘배채법’을 활용하여 남은 색에 뚜렷한 질감, 최소한의 존재감, 그리고 그가 “내면의 소리를 만나다”라고 표현하는 소리의 결을 부여했다. 이것은 달빛에 비친 바닷가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는 ‘빛+결’ 시리즈가 그때까지 찾아보기 힘들었던 방식으로 추상화에서 색채의 발현을 추구하며 발전하기 시작한 때와 가깝다. 많은 이들이 1990년대부터 2000년 초의 이 변천을 현대 회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로 여긴다. 이춘환이 자연의 깊이를 작품에 담기 시작하면서 그의 색채 활용은 한층 과감해졌다. 자연의 과거, 현재, 미래의 놀라운 현존성을 부활시킴으로써 그의 색들은 자연의 정수를 담게 되고, 일상적인 현상이 망각되지 않고 오히려 감각적 이해의 경이로운 절정을 이루며 거듭 재현된다.


이춘환의 ‘빛+결’에서 색상은 충돌이 아니라 화합의 표현이다. 켜켜이 쌓아 올린 레이어를 통한 색 표현은 자연의 순환과 음양의 이치를 담아낸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한국의 오방색, 즉 흰색, 검은색, 파란색, 노란색, 빨간색과 마주한다. 이는 실제 색의 표현을 넘어 심오한 은유적 표현이다. 이춘환의 ‘빛+결’ 시리즈는 한지에 수묵으로 출발한다. 무채색은 10세기 북송 산수화에서 그랬듯이 색채의 기초로 인식된다. 수 세기가 지난 오늘날 이것들은 이춘환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색의 기원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