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취(韻趣)의 자연_산(山)
― 글. 박정수 (미술평론가)
노자(老子)에 무위(無爲)는 곧 자연(自然)이라 했습니다. 무위는 없는 것이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조건을 갖지 않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자연은 이미 그것으로 존재하고 변화의 상태를 잘 알고 있지 않으면 예술작품으로 담아낼 수 없다는 말과 통상합니다. 인공이 가해지고, 자연의 색과 다른 인위적 색상으로 구성되어져 있으나 그가 그려내는 산은 무위(無爲)에서 시작되어 자연에 동화되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의 산은 이미 자연에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동양의 사상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두 개의 축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둘이면서 하나인 것의 개념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자연의 개념으로서 우주자연의 섭리를 리(理)로 이해하였고, 인간의 삶과 관련된 환경과 조건의 성립을 기(氣)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기(理氣)의 개념에 인간의 정신이 관여하면서 기운(氣韻)이라는 화론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연과 자연의 운행 원리를 이기(理氣)라 한다면 자연과 인간의 물리적 활동이나 정신활동의 개념을 표현하는 것이 곧 기운(氣韻)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즈음하여 이춘환이 추구하는 산의 개념이 시작됩니다.
사람이 자연을 극복하려 하듯이 예술가는 사람의 환경과 정신의 관계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신의 발전을 추구합니다. 이춘환은 다양한 관점과 방법으로 자연과 사회, 사람과 자연의 조화로운 삶을 구성할 수 있는 정신세계를 찾아냅니다. 그는 이를 기운(氣韻)의 관계로 보면서 자연의 모습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운행원리와 자연과 사람의 관계설정에 방점을 구성합니다.
생기 왕성한 녹색과 푸른색, 정신활동의 활성이 있는 붉은색을 중심으로 태고적부터 거기에 있었을 바위산을 그려냅니다. 바위는 바위가 아니라 역사를 살아있게 하는 자연의 모태입니다. 여기에 사람의 정신과 사람의 역사를 대변하는 소나무를 포진시킵니다. 소나무나 바위산에 정신성을 가미하여 자연의 본래적 모습을 이해하는 방식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그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것을 어떻게 드러내는가 하는 철학적 접근입니다.
이춘환은 자연 그 자체를 작품으로 옮겨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모습이 사람의 정신과 마음에 들어와 거기에서 형성된 자연 본래의 상태를 찾아냅니다. 이것이 자연과 사람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며, 거대한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의 근간을 따르는 일입니다. 자연의 모습을 모태로 예술가의 입장과 조건에 따라 변화시키면서도 자연 그 자체를 그대로 둡니다. 캔버스나 종이 위에서 완성된 자연은 물질로서 공간의 영역을 차지하지만 평면의 물질위에서 그의 산은 대자연의 모습을 포용한다는 것 자체가 됩니다. 인간 활동의 영역에서 자연의 모습이 각인되어지지만 그것을 기록하는 존재증명에 대한 정신의 영역을 시각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춘환의 산은 작가 개인의 영역을 벗어나 객관적 영역으로 전환되어져 있습니다.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조화로움은 그의 또 다른 시리즈의 하나인 달 항아리의 품격에도 그대로 수용되어 표현됩니다. 산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달 항아리 시리즈는 자연에 대한 심미적 품격으로서 자연의 도를 체득한 양태로 드러나 오늘의 감정과 감성에 영향을 가하고 있습니다. 세속의 음습한 기운을 초월하고 자연의 도를 체득하고자 하는 자연회귀의 자리에 그의 작품이 자리하는 것입니다.
이춘환의 산은 유연한 상태를 보이면서 굳세고 강직한 기운(氣韻)을 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운(韻)을 앞세워 기(氣)를 강화시키는 것으로 예술가로서 이춘환만이 지닌 특별한 능력입니다.
* 운취(韻趣): 동양화론(畵論)으로서 생동하는 기운을 잡아내는 일 또는 기운의 취득을 뜻함
운취(韻趣)의 자연_산(山)
― 글. 박정수 (미술평론가)
노자(老子)에 무위(無爲)는 곧 자연(自然)이라 했습니다. 무위는 없는 것이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조건을 갖지 않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자연은 이미 그것으로 존재하고 변화의 상태를 잘 알고 있지 않으면 예술작품으로 담아낼 수 없다는 말과 통상합니다. 인공이 가해지고, 자연의 색과 다른 인위적 색상으로 구성되어져 있으나 그가 그려내는 산은 무위(無爲)에서 시작되어 자연에 동화되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의 산은 이미 자연에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동양의 사상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두 개의 축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둘이면서 하나인 것의 개념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자연의 개념으로서 우주자연의 섭리를 리(理)로 이해하였고, 인간의 삶과 관련된 환경과 조건의 성립을 기(氣)로 받아들였습니다. 이기(理氣)의 개념에 인간의 정신이 관여하면서 기운(氣韻)이라는 화론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자연과 자연의 운행 원리를 이기(理氣)라 한다면 자연과 인간의 물리적 활동이나 정신활동의 개념을 표현하는 것이 곧 기운(氣韻)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즈음하여 이춘환이 추구하는 산의 개념이 시작됩니다.
사람이 자연을 극복하려 하듯이 예술가는 사람의 환경과 정신의 관계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신의 발전을 추구합니다. 이춘환은 다양한 관점과 방법으로 자연과 사회, 사람과 자연의 조화로운 삶을 구성할 수 있는 정신세계를 찾아냅니다. 그는 이를 기운(氣韻)의 관계로 보면서 자연의 모습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운행원리와 자연과 사람의 관계설정에 방점을 구성합니다.
생기 왕성한 녹색과 푸른색, 정신활동의 활성이 있는 붉은색을 중심으로 태고적부터 거기에 있었을 바위산을 그려냅니다. 바위는 바위가 아니라 역사를 살아있게 하는 자연의 모태입니다. 여기에 사람의 정신과 사람의 역사를 대변하는 소나무를 포진시킵니다. 소나무나 바위산에 정신성을 가미하여 자연의 본래적 모습을 이해하는 방식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그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것을 어떻게 드러내는가 하는 철학적 접근입니다.
이춘환은 자연 그 자체를 작품으로 옮겨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모습이 사람의 정신과 마음에 들어와 거기에서 형성된 자연 본래의 상태를 찾아냅니다. 이것이 자연과 사람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며, 거대한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의 근간을 따르는 일입니다. 자연의 모습을 모태로 예술가의 입장과 조건에 따라 변화시키면서도 자연 그 자체를 그대로 둡니다. 캔버스나 종이 위에서 완성된 자연은 물질로서 공간의 영역을 차지하지만 평면의 물질위에서 그의 산은 대자연의 모습을 포용한다는 것 자체가 됩니다. 인간 활동의 영역에서 자연의 모습이 각인되어지지만 그것을 기록하는 존재증명에 대한 정신의 영역을 시각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춘환의 산은 작가 개인의 영역을 벗어나 객관적 영역으로 전환되어져 있습니다.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조화로움은 그의 또 다른 시리즈의 하나인 달 항아리의 품격에도 그대로 수용되어 표현됩니다. 산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달 항아리 시리즈는 자연에 대한 심미적 품격으로서 자연의 도를 체득한 양태로 드러나 오늘의 감정과 감성에 영향을 가하고 있습니다. 세속의 음습한 기운을 초월하고 자연의 도를 체득하고자 하는 자연회귀의 자리에 그의 작품이 자리하는 것입니다.
이춘환의 산은 유연한 상태를 보이면서 굳세고 강직한 기운(氣韻)을 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운(韻)을 앞세워 기(氣)를 강화시키는 것으로 예술가로서 이춘환만이 지닌 특별한 능력입니다.
* 운취(韻趣): 동양화론(畵論)으로서 생동하는 기운을 잡아내는 일 또는 기운의 취득을 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