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싣는 청고(淸高)한 미학(美學)

1999-10-13

바람에 싣는 청고(淸高)한 미학(美學)

― 글. 장윤우 (성신여자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시인)


팔십인생의 절반을 지배해 온건 바람이었다는 문단 원로 대가(大家) 미당(美堂)은 내 시(詩)의 길을 열어준 서정주(徐廷柱) 시인(詩人)이시다.


20대에 시인으로 꿈을 틔워주고 이순(耳順)을 넘어서는 지금에 이르도록 시단(詩壇)이거나 미술계(美術界), 아니 삶의 어느 정도는 그분에게서 떼어, 오늘 내게 또 한 사람의 풍류객(風流客)을 만나고 있는 가치(價値)를 뜻깊이 새기게 한다.


시인(詩人)이자 한국화가인 서정(瑞丁) 이춘환(李春煥)은 비단 나 뿐아니라, 그를 접하고 지내는 식자(識者)들에게는 그야말로 세진(世塵)과 세파(世波)의 혼탁속에서 솔바람 향기를 맡게 해준다. 우리네 고향(故鄕)이자 터전인 인사동(仁寺洞)으로 서정(瑞丁) 화실(畵室)을 자주 찾게 되는 이유중에 하나는 홍진의 때를 벗고 속기(俗氣)없는 그의 바람을 쐬고 싶기 때문이다. 온통 사위(四圍)가 썩어가는 때에 서정(瑞丁은 抒情)에게서나 청고(淸高)한, 어찌보면 미련스러운 모습으로서 황량하고 소소(簫疏)한 바람을, 기운을 얻지 않고서는 못견딜 것 같아서이다. 그렇다손 젊은 그를 당대(當代)의 양주팔괴(揚州八怪)에 굳이 비유하는 것도 아니다.


어지러운 세태(世態)가 그림만으로 생계(生計)를 이을수 있는 풍토(風土)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나는 가난(?)한 한국화가의 아내로서, 어느 시인(詩人)의 지어미로서, 힘겹고 눈물겨운 내조(內助)를 모를리 없는 이춘환(李春煥)의 데뷔작 한구절을 인용하고 싶어진다.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 같은

가슴을 헐떡이며

머얼리 잡히지 않는

단비를 보듬은 구름을 기다리며 사네

터져 거칠은, 내 반쪽의 손마디를 더듬으니 붉어지는 눈시울,

차마 들킬세라 습관처럼 고개짓만 하는데

화가의 아내로 이미 20여 성상을

그렇게 살았다는 듯 눈가에 잔주름 일도록

마냥 미소만 짓네


「화가의 아내」 한맥문학 6월호


시(詩)이기 보다 아내에 감사하는 헌사(獻辭)이다. 필자(筆者)가 일부러 친 밑줄에 특히 주의해 보면, 어려운 이 시대(時代)를 걷는 미술인과 예술인들이 모두 공감하는 공통의 헌시(獻詩)이며, 굴절된 현실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서정 화백은 「낙원동 연가」 「일상에서」등의 시편(詩篇)에서 일상(日常)을 농축 하였거니와 주(週)1회 이상은 인사동(仁寺洞) 바람을 쐬지 않고는 충전(充電)되지않는 나와 같은 뜻의 지인(知人)들로서는 그의 8회 개인전을 유독히 관심 기울이고 있다. 미술가(美術家)로서 보다 시인(詩人)으로서의 내눈을 띄어준 미당 서정주(美堂 徐廷柱)님과 마찬가지로 시인으로서도 대성(大成)을 예견하는 서정(瑞丁)은 시(詩)의 편력(偏歷)도 바람일거라는 공통분모(共通分母)를―


결국 인간(人間)은 한줌의 재로 흩날려 갈것임을 굳이 내세우는 뜻은 나이 답지않게 성숙하고 어딘가 고적(孤寂)한 모습이 나와 닮기 때문이다. 7번째의 작품전(作品展)에서 「속기(俗氣)없는 비가시(非可視)의 가시성(可視性)」을 언급했거니와, 기실 더깊은 밑도없는 바닥에는 숨길수 없는 적조(寂照)가 흐른다. 시서화(詩書畵)를 절(絶)하는 문인화(文人畵) 정신(精神)이며 끝도 없고 가이없는 바람따라 흔들리는 유랑(流浪, vegabond)이다.


유랑인으로서의 탐험과 실험은 1년을 넘지않고 다시 넘쳐 제시(提示)하는 신작(新作)들이 입증하므로 화단사(畵壇史)에 정리되어야 한다. 어찌보면 시인(詩人)이고, 다시 보면 묵객(墨客)인 서정의 진면목(眞面目)을 누가 바로 정곡을 찔러주기 바라면서 망언다사(忘言多謝)한다.